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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흥사단 대학생기자단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문학 작품은 '구라'다!

  아래 사진은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익숙한 장면입니다. 마치 사전을 한 장 한 장 씹어먹듯 작품의 모든 구절을 분석하다 못해 '분해'하는 광경, 우리는 학창 시절에 문학 작품을 이런 식으로 읽었습니다.




  아니, 사실 우리는 수업 시간에 문학 작품을 읽지 않았습니다. 작품의 주제는 무엇인지, 어떤 구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당 작품의 집필 배경은 어떠한지 따위를 일방적으로 전달받고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였을 뿐이죠. 심지어 그 해석(?)은 억지투성이에 엉터리일 때도 많습니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우리가 그렇게 받아들인 문학 작품은 '구라'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특히 잘 보여주는 작품이 '황순원'의 「소나기」입니다.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 그저 둘이서 산에 놀러 갔다 왔을 뿐


  이 작품은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있고 고등학생들이 사용하는 문제집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쓰던 책을 뒤적거리니 역시나, 해제(解題 : 책을 쓴 사람, 쓴 동기, 내용의 대강, 출판의 연월일 따위의 간단한 설명)가 깔끔하게 필기되어 있었습니다.



갈래 : 단편 소설, 성장 소설.

배경 : 시간 - 가을, 공간 - 어느 시골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문체 : 어린 시절의 순박한 동심을 잘 드러내는 간결하고 평이한 문체

의의 : 잃어버린 꿈의 세계를 되살리게 하여 인간이 가진 순수한 세계를 재확인시켜 줌

주제 :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



  잠깐, 주제가 '사랑'이라고요? 소년이 소녀를 만나 마을 인근 산에 놀러 갔다 온 게 이 이야기의 전부인데, 여기에서 '사랑'이란 단어를 뽑아낸다는 게 그럴 듯한가요? 물론 소년과 소녀의 첫 만남은 소년이 지나치게 부끄러움을 타서 어물쩡 넘어갔고, 둘이 산에 놀러갔을 때 소년이 소녀에게 정말 잘해 주긴 했지만, 그것만 가지고 '사랑'이라 말하기엔 억지스러운 감이 적지 않습니다.


  소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년이 말을 건네긴커녕 자신을 쳐다보지도 못하니 자신이 먼저 소년에게 다가갔는데, 그런 일이 '사랑'해야만 일어나나요? 그냥 친구로서 친해지고 싶을 수도 있죠. 소년에게 인근 산으로 놀러가자고 제안한 것도 '사랑'에서 기인한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소녀 자신은 이사온 지 얼마 안 돼서 이 동네 지리를 잘 모르니 이 동네 토박이인 소년에게 관련 정보를 얻고 싶었던 거라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럽죠. 


  비를 너무 많이 맞은 탓에 병들어 죽은 소녀가 유언으로 '자기 입던 옷(산에 놀러갈 때 입었던 옷이겠지요)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산으로 놀러갔던 일이 재밌었으니 죽어서도 기억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걸 소년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해석한다면 너무 앞서 나간 겁니다.





  '먹장구름'이 복선? '보랏빛'은 죽음의 색?


  엉터리 해석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어서들 집으로 가거라. 소나기가 올라."

 

 참, 먹장구름 한 장이 머리 위에 와 있다. 갑자기 사면이 소란스러워진 것 같다. 바람이 우수수 소리를 내며 지나간다. 삽시간에 주위가 보랏빛으로 변했다.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무 잎에서 빗방울 듣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뜻 선뜻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먹장구름'은 소녀의 죽음을 알리는 복선(伏線 : 소설이나 희곡 따위에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에 대하여 미리 독자에게 넌지시 암시하는 서술)이며 '보랏빛'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책에 그렇게 필기를 해 놓았네요.


  그런데, 비가 내리기 직전에 구름이 잿빛으로 변하고 하늘이 보랏빛으로 변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요? 물론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다 보면 이 풍경과 소녀의 죽음이 무관하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몸이 약한 소녀에겐 쏟아지는 비가 치명적이었죠. 하지만 소녀보다 더 많은 비를 맞은 소년은 멀쩡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비 내리기 직전의 당연한 풍경이 소녀의 죽음과 연관된다고 말할 순 있지만, 그 풍경이 소녀의 죽음을 암시한다고 단정짓기엔 무리가 있죠.


  '보라색'이라는 빛깔 자체에 대한 해석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라색이 죽음을 의미한다고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런 의미'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가 전부는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보랏빛'은 그저 비 오기 직전의 하늘 빛깔을 묘사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그걸 굳이 소녀의 죽음과 연관짓는 건 순 억지일 수밖에요.




  물론 문학을 학문의 영역으로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식의 분석이 의미가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문학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에서 감동이나 재미를 느끼는 게 우선이지 그런 억지 해석을 달달 외워 시험을 치르는 게 우선이 아닙니다. 우리가 노래를 들을 때 그 곡은 코드 진행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무슨 악기를 어디에 배치했는지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듣지 않듯, 문학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히려 작품으로부터 받는 감동이나 재미를 해칠 뿐입니다.



 = 흥사단 대학생기자 김현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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