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전쟁’ 그 이상의 전쟁 - 종합편성채널의 불편한 진실
본지 편집위원 김현혜
2011년 12월 1일, 신생 방송사 4개국이 개국했다. 개국 며칠 만에 '형광등 100개'라는 유행어가 등장했다. 그 채널로 이적한 PD나 아나운서, 그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에 대한 누리꾼의 시선은 곱지 않다. 사람들은 이 채널이 개국하기 직전 방영된 MBC '무한도전'의 'TV전쟁'편이 이 채널의 개국을 풍자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다른 팀 카메라를 빼앗아 자기 팀 촬영 분량을 확보하고, 자기 팀 시청률을 올려 다른 팀의 방송 송출을 중단하기 위해 스타 게스트를 초빙하고 자극적인 공연을 선보였는데, 이 모습이 개국을 앞두고 개국특집 쇼 준비와 유명 스타 캐스팅에 열을 올리는 신생 채널의 행태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자꾸 종편, 종편 하는데, 도대체 그게 뭐야?
이 4개 신생 채널을 '종합편성채널', 줄여서 '종편'이라고 흔히 말한다. 종합편성채널이란 드라마·교양·오락·스포츠·뉴스 등 모든 장르를 편성하여 방송할 수 있는 채널을 말한다. 모든 장르를 편성한다는 점에서는 지상파와 같지만, 케이블TV(유선방송)나 위성TV를 통해서만 송출하기 때문에 케이블/위성TV 서비스에 가입한 가구만 시청할 수 있고, 24시간 내내 방송을 편성할 수 있으며 중간 광고도 가능하다.
대기업·신문사의 방송사 소유 허용
2008년 12월 3일, 한나라당은 방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4일 전체회의에서 ‘개정안을 검토한 결과 대기업과 신문 그리고 뉴스통신의 방송 소유 지분 규제를 완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대부분 수용한다’고 밝혔다. 이 법안에 따르면 대기업이나 신문사도 지상파 방송사, 종합편성·보도PP 지분을 일정 범위 이내에서 소유할 수 있다. 같은 달 26일에는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이 신문법(신문등의자유와기능보장에관한법률 전부개정법률안)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에 따르면 신문사가 방송사를 겸영할 수 있다.
언론과 각 정당은 이 두 법안과 IPTV법(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 사업법), 언론중재법,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디지털전환법(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의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 방송의 활성화에 관한 특별법) 등을 포함하여 편의상 ‘미디어법’이라고 통칭했다. 이 법안은 2009년 7월 22일 국회를 통과했고, 2010년 11월 30일부터 종합편성채널 신청서 접수를 시작해 6개 신청자 중 4개 사업자가 선정되었다.
보다 풍성한 콘텐츠와 경제발전 기대 vs 대기업의 독점으로 인한 미디어 다양성 훼손
미디어 관련 법 개정(과 그로 인한 종합편성채널 개국)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방송 콘텐츠의 품질 향상과 미디어 산업 발달을 통한 경제 발전을 이유로 든다. 기존 케이블/위성방송 채널은 특정 장르만 방영할 수 있었지만 종합편성채널은 다양한 장르를 편성할 수 있으므로 풍성한 콘텐츠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방송 사업자가 증가하므로 경쟁을 유발해 콘텐츠의 품질 향상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도준호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시청자는 종편을 통해 선택권이 증가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며 “’슈퍼스타K’처럼 지상파에서 편성할 수 없었던 프로그램들, 지상파와 차별화된 고급 콘텐츠를 기대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또한 종편의 등장으로 미디어 산업이 급속히 발전할 것이며 이는 경제발전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2009년 3월 13일 울산 남구 달동 한나라당 울산시당 강당에서 열린 '여성정치아카데미' 강연에서 "미디어법은 각종 규제를 풀어 업계에 돈을 끌어와 이를 신 성장동력, 즉 '미래 먹을거리'로 만드는 기반"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 입장도 만만치 않다. 미디어 시장에 대기업이 진출해 인수합병 방식으로 방송 시장을 재편하므로 미디어의 다양성이 깨진다는 것이다. 최진봉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미국 내 언론 학자들도 거대 미디어 그룹이 언론을 장악해 편파적이고 보수적인 여론형성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데 여당이 이를 선진 언론이라 소개하면서 배우겠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을 따라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원용진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일본은 신문이 여론을 주도하면 방송이 이를 따르고 정치와 사회가 따르는 방향으로 흐르는 현상이 자주 보이는데 그 앞에는 신방겸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며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은 그런 사회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신문이 모든 여론을 독과점하고 이끄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미디어 산업의 발달로 인한 경제발전 효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었다. 최 교수는 "거대 미디어 그룹이 미국 전체 언론 시장의 약 90%를 장악하면서 언론계 종사자 수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종편에 쏟아지는 특혜 – 의무전송, 황금채널 배정, 느슨한 심의규정, 광고 직접 영업 가능
현행 방송법 시행령 53조는 ‘케이블이나 위성방송 사업자들이 채널을 구성할 때 반드시 종편을 포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놓고 2011년 11월 25일 노컷뉴스가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시행령은 2000년 통합방송법 제정 때 콘텐츠시장 활성화를 위해 영세한 외주전문제작 채널을 지원할 목적으로 제정했다는 것이다. 노컷뉴스는 또한 당시에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금지했고 대기업의 방송 진출도 제한하고 있었지만, 대기업과 대형 신문사가 종편에 진입한 현재 상황에서 의무전송 조항의 취지는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한 종편 4사가 케이블과 위성방송, IPTV에서 모두 10번 중후반대 '황금채널'을 배정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와 종편 사업자가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를 압박했다는 의혹도 나왔다. 경향신문의 2011년 10월 7일 보도에 따르면, 최시중 당시 방통위원장은 2010년도 국감에서 “종편 채널이 70~80번대에서 외톨이로 있으면 안 된다”며 행정지도 차원에서 관리가 가능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한국일보는 2011년 12월 1일, "종편들이 기본적인 제안서나 편성계획도 내지 않고 무조건 좋은 채널 달라고 윽박지르는 수준이었다"는 제보도 있었으며 'SO들의 약점을 쥐고 있다'는 식의 협박도 일삼았다고 보도했다.
종편채널은 규제도 지상파에 비해 느슨하다. 종편에 대해서는 방송 프로그램에 관한 심의기준이 존재하지 않으며, 프로그램 편성에 대하여도 지상파 채널에 비해 규제가 약하다. 현재 지상파의 경우 분기별 방송 시간의 60%~80%를 국내 제작물로 편성해야 하지만, 종편의 경우 국내 제작물 의무편성 비율이 20~50%에 불과하다. 종편 역시 모든 장르를 편성할 수 있으므로 지상파와 큰 차이가 없지만 지상파와 달리 거의 규제를 받지 않는 것이다.
광고 직접 영업이 가능하다는 점 역시 종편에 대한 특혜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2011년 8월 30일 국회 출입기자 53명은 성명서를 통해 “미디어 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 설치 입법은 서울과 지방 여론, 과점 매체(조선·중앙·동아+매일경제)와 비과점 매체 간의 균형을 찾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한나라당은 지난 6월 국회에 이어 8월 국회에서도 이 입법을 각종 핑계를 대며 미뤘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또한 “한나라당은 정상적 방식으로는 생존이 불가능한 종편들에게 황금채널을 배정하고 중간광고를 허용하며 게다가 광고 직거래라는 아편을 안겨주려 하고 있다”며 “이는 대한민국 언론의 위기요, 민주주의의 위기이며, 여론 다양성의 실종이면서 동시에 지역 균형발전의 명백한 후퇴”라고 말했다.
개국 후 1개월, 그래서 제 점수는요 – 선정성, 왜곡보도, 이념편향성 논란
게다가 종합편성채널 출범 이후 선정성, 왜곡보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아일보 소속의 채널A는 개국 특집 다큐멘터리 ‘트로이의 하얀 묵시록’에서 개가 다른 개를 산 채로 잡아먹는 장면을 여과없이 내보냈고, MBN의 경우 출연자의 속옷이 노출되었는데 이를 편집하지 않고 모자이크 처리하여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 경고 조치를 받았다. 또한 4개 종합편성채널 모두 개국 당일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의 대담을 별도 프로그램으로 편성하고 뉴스로도 보도하여, 여권 유력 대선후보인 박 의원을 노골적으로 띄워주려 한다는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이지혜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중동방송모니터 팀장은 “종편채널의 방송 뉴스 및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념 편향성과 선정주의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보도 부문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됐다”고 지적했다. 종합편성채널은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인 시의성, 접근성, 이슈의 중요도에 따른 기사 배치를 지키지 않고, 이념이나 선정성이 두드러지는 아이템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TV조선의 경우 12월 3일 한미FTA 비준 무효 집회를 보도하면서 ‘교통체증’을 부각하여 사건의 본질을 흐렸고, 12월 7일에는 ‘A양 동영상’ 확산을 SNS의 부작용으로 몰아갔다. 특히 A양 관련 보도는 현 정부가 SNS를 규제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이에 힘을 실어 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광고 직접 영업 사실상 허용, 거대 언론사를 등에 업고 기업 압박에 나서는 종편채널
한국방송광고공사는 1981년 1월 20일 설립된 공영 미디어렙이다. 미디어렙이란 Media(매체)와 Representative(대표자)의 합성어로, 방송사와 광고주 사이에서 광고판매를 대행하는 회사를 말한다. 미디어렙을 두는 것은 방송사가 광고를 얻기 위해 광고주를 압박하거나 광고주가 광고판매를 빌미로 방송사의 보도에 압력을 주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간 국내 지상파 방송사와 라디오방송 등 37개 채널은 한국방송광고공사를 통해 광고판매를 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었지만, 2008년 11월 27일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국내에서도 민영 미디어렙 도입 논의가 시작됐다.
그런데 그간 관련 법안이 존재하지 않아 종편은 광고를 직거래했으며, 2012년 2월 9일 국회를 통과한 방송광고판매대행사법안은 종편의 미디어렙 위탁 의무를 3년간 유예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종편이 자사 대주주인 메이저 신문사의 힘을 등에 업고 기업에 광고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1월 6일 MBC는 종편의 평균 광고 시청률은 지상파 평균 광고 시청률의 1/16에 불과하지만 종편 측이 요구하는 광고 단가는 지상파의 70% 수준이며, 종편이 보도를 빌미로 광고와 협찬을 기업에게 강요하다고 있다고 보도했다.
‘TV전쟁’ 그 이상의 전쟁, 당신은 무슨 채널을 보고 있는가
영세한 방송사 여럿에서 시작하여 인수·합병을 통해 거대 방송사 몇 개만 살아남고, 그 중에서도 더 영향력 있는 방송사만이 끝까지 남는다는 결말. ‘무한도전’의 ‘TV전쟁’편은 이를 웃음으로 승화시켰지만 현실에서 벌어지는 ‘TV전쟁’은 종편채널에 대한 각종 특혜 논란, 선정성 논란과 왜곡보도, 지역민방과 같은 영세 사업자 도태로 인한 미디어 다양성 훼손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제 개국한 지 2개월 남짓 지난 종합편성채널은 현재 평균 시청률 1% 이하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내놓고 있지만, 광고 직접 영업 허용·의무전송·황금채널 배정 등의 특혜와 거대 언론사의 힘을 등에 업고 안방극장에서 ‘TV전쟁’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지금 당신이 시청하는 것은 단지 TV프로그램이 아니다. 수많은 논란의 근원인 종합편성채널, 다시 말해 ‘TV전쟁’ 그 이상의 전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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