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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춘천교대 석우교지편집위원회

악역을 맡아야 하는 자의 슬픔 (2012 석우 겨울호)

악역을 맡아야 하는 자의 슬픔

 

본지 편집위원 김현혜

 

안녕하세요, 선생님. 정말 오랜만에 뵙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도 나누고, 실마리도 하나 잡고 싶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춘천교대 커리큘럼에 따라 저는 지난해 11월에 4주 간, 올해 5월에도 4주 간 교육실습을 다녀왔습니다. 그 기간에, 저는 내내 고민했습니다. 학교에서 아무리 긍정적인 방향으로 아이를 유도해도, 집에만 다녀오면 아이는 원점으로 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부모는 대개 담임선생님의 가정통신에 비협조적이었습니다.

 

맞아요. 가정과 연계되지 못하는 학교교육은 그리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없어요. 올해 우리 반 아이 중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네요. 초등학교 1학년생인데, 누가 손만 잡아도 무서워하고 이리 오라고 손짓해도 두려움에 질려서 도망가곤 했죠. 입학 이전 그 아이가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에서 학대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아이가 몸에 멍이 들어 등교한 적도 있고, 그로부터 며칠 뒤엔 엄마한테 맞았다고 스스로 말한 것으로 보아, 아마 가정에서 그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친구를 때리는 것을 발견하고 주의를 주면, 자신이 그러지 않았다고 말하며 일단 상황을 모면하려고도 했습니다. 교과서나 학습 준비물을 챙겨오는 일이 드물어 친구에게 빌려 쓰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보니, 아이가 심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보이고요. 하지만 아이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 부모에게 알리고 도움을 구하려 해도, 그 아이 부모님이 모든 상황을 부정했기 때문에 쉽지가 않았어요. 우리 애는 누굴 때릴 성격이 못 된다, 준비물도 다 챙겨 보냈다. 학부모 총회 때 직접 얼굴을 보면서 말하고 싶었는데, 그것도 뜻처럼 되지 않았죠.

 

그러고 보니, 제가 올해 실습에서 만난 아이 중에도 가정과 연계가 되지 않아 지도가 힘든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올해 3학년생인데, 수업 시작 전에 늘 어디가 아프다거나 다쳤다며 선생님의 관심을 요구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선 그 아이가 처한 상황을 바꾸고 싶어 그 아이 집에 가정통신문도 보내시고 전화도 수시로 하셨지만, 응답이 없어 늘 고민하셨습니다.

 

그래도 우리 반 아이는 1학기 끝날 무렵이 되니 굉장히 좋아졌어요. 처음엔 나를 믿을 수 없어서 그렇게 겁을 냈던 거예요. 물론 방학이 지나 2학기에 다시 등교를 하니, 1학기 때의 그 모습이 어느 정도 되살아나긴 했어요. 하지만 그것도 1학기 초에 비하면 상당히 덜한 수준이었고, 2~3주 정도 지나니 다시 예전만큼 좋아졌어요.

 

학교교육에 힘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시네요. 하지만 단독으론 힘을 내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 가정과의 연계가 꼭 필요한데, 그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이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학부모에게 알리고 도움을 청하면, 그걸 촌지 요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실제로 촌지 요구를 저도 초등학생 시절에 당한 적이 있고요.

 

예전에 근무하던 학교에서, 실제로 학부모 사이에 그런 얘기가 오가는 걸 들었어요. 예전에 찔러준 게 약발이 다한 것 같다, 얼마를 더 줘야 적당할까 등 촌지를 암시하는 이야기였죠. 서로를 믿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여전히 발생하다니 안타까웠어요.

 

사람들은 학교폭력이니 다문화 교육이니 하는 각종 사회적 요구를 모두 학교 부담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학교에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정작 가정교육과 연계되지 못하는 학교교육이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건 간과하는 듯합니다. 교육사회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콜만 보고서만 해도, 비록 학업성취 중심으로 논의를 풀어나가고는 있지만, 학교교육보다는 가정환경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걸 학교 탓으로만 돌리네요. 학교는 악역을 (스스로) 맡은 자도 아니고 ‘(외부 압력 때문에) 악역을 맡아야 하는 자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앞서 말한 내 경험을 보면 알 수 있죠. 학교교육이 전혀 힘이 없는 건 아니에요. 학교교육을 가정과 연계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임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일단 교사가 할 몫은 아이의 겉모습과 내면, 그리고 영혼까지 내다보는 것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이가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잘못한 일에 대해 주의를 주는 건 물론 당연하지만, 그런 방향에만 치우치면 아이가 교사의 사랑을 느낄 수 없어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학교교육을 가정으로 연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다 많은 사람이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정과 단절된 학교에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 자의 슬픔이 가득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