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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춘천교대 석우교지편집위원회

5%의 민주주의, 절망적인 ‘잠재적 교육과정’ (2012 석우 겨울호)




5%의 민주주의, 절망적인 잠재적 교육과정

 

본지 편집위원 김현혜

 

총장공모제 도입 논의 1년 간 학생에게는 정보와 참여 기회 차단

교수 의견 100%로 총장 뽑던 시절에 비하면 60%는 낮은 것. 지분 싸움 하지 말고 차기 총장에게 필요한 역량 논의하자.”

지분 싸움이 아니라 보편적 타당성을 고려해야 할 사안

교직원 측은 성명서 발표, 학생 측은 1인 시위와 단체 행동 기획

교수 측은 총장추천위원회 20인 중 교수 12, 학생 1강행

 

 

교직 과정을 밟는 사람이라면 잠재적 교육과정이라는 말을 한 번은 듣는다. 교육과정(Curriculum)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학습자가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 때문에 하게 되는 경험을 일컫는 말로, 욕설이 대표적이다. 욕설이란 학교에서 별도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지만, 초등학교 6년 과정만 밟아도 사람들은 주요 욕설의 의미와 뉘앙스를 정확히 파악하고 맥락에 알맞게 욕설을 구사한다.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주변 환경의 영향으로 내면화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잠재적 교육과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난 10, 춘천교대의 잠재적 교육과정이 무엇인지 명백히 드러내는 사건이 터졌다.

 

 

갑작스러운 정보, 총장 선출에 학생 영향력은 5%?

2011104, 춘천교대 포함 8개 교육대학교가 총장직선제를 포기하고 교육과학기술부와 MOU를 체결하면서 총장공모제 도입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지난 9월 말 춘천교대 28대 총학생회 측에서 뒤늦게 정보를 접하고 학생들에게 이를 알려 지지 서명을 받기 전까지 아무도 총장공모제 관련 진행 상황을 알지 못했다. 총장공모제 도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학교 측이 학생에게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았던 것이다.

 

총학생회 측은 성명서를 통해 총장 후보를 선정하기 위한 기구인 총장추천위원회20인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 학생 대표가 1인밖에 안 되는 데 반해 교수 측은 12명이나 된다.”교원대표를 제외한 총장추천위원회의 인원이 반대하더라도 총장이 뽑힐 수 있는 상황으로 교원에게 총장선출의 권리를 지나치게 부여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60%도 낮다는 의견이 있다”, “지분 싸움 하지 말자” vs “보편적 타당성 부재”, “왜 그동안 학생에게 정보도 참여 기회도 전혀 주지 않았는가

지난 1017일 오후 3시 춘천교대 본관 대회의실에서 학생 100여명, 교직원 대표 3, 교수 5명이 참여한 가운데 총장공모제 관련 교수-교직원-학생 간담회가 열렸다. 교무처장 김왕근 교수(사회과교육과)총장추천위원회 20인 중 교수 비중 60%가 부당하다 말하지만, 총장직선제 시절 교수 비중이 100%였던 것에 비해 상당히 낮아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일단 이번 선거는 교수 60%를 유지하고 나중에 우리 학교 규정을 고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금은 전국 국공립대의 시선이 춘천교대에 몰려 있고, 총장공모제로 돌아선 타 국공립대 역시 교수 비중을 60%로 결정했다.”“50%의 지지로 당선된 총장은 대외적 입지가 낮아질 것이라고 교수들이 우려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학생 측이 교수 비중을 50%로 낮추면 총장이 절반의 지지로 당선될 것이라는 의견은 학생과 교직원의 의견이 교수와 전혀 다를 것이라 가정하는 것이냐고 반문하자, 기획연구처장 서동엽 교수(수학교육과)춘천교대 총장선거 역사상 교수들이 특정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 적은 없다.”며 총장공모제로 선출된 총장이 교수 집단만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서 교수는 이어 지분 싸움은 지양하고 차기 총장에게 요구되는 역량에 대해 논의하자는 말도 덧붙였다. 교직원 측은 이것은 지분 싸움이 아니라 보편적 타당성을 논하려는 것이라며 특정 구성원의 힘이 지나치게 강한 것은 부당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학생 측이 소통을 원했으나 막상 이 자리에는 교수님이 거의 참석하지 않았다.”내일 회의를 통해 이 안건(교수 비중 60%)이 통과된다고 하는데, 그 전에 교수님과 학생이 정말 의사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서 교수는 학생 의견을 우리(간담회에 참여한 교수)가 잘 전달할 텐데 우리를 못 믿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김 교수는 총학생회 차원에서 교수들에게 연락을 돌려 그런 자리를 만들어보라고 말했다.

 

학생 측이 언론 보도에 따르면 총장공모제 관련 MOU는 작년 하반기에 이미 체결되었다고 하는데,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왜 지금까지 학생에게는 어떤 정보도 참여기회도 주지 않다가 모든 것이 다 완성되고 나서야 통보하는지 의문이라 말하자, 서 교수는 물론 그 부분이 학생 입장에서 아쉬웠을 수 있지만, 그렇다면 학생이 먼저 참여하겠다고 말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학생 측은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학생이 참여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반박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학생들은 대다수 학생이 수업을 듣는 오후 3시에 간담회 일정을 잡고 하루 전(1016)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부당하다.”, “정작 보직교수 외에는 어떤 교수도 참석하지 않았다. 이는 우리와 소통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인상을 준다.”, “학생 의견을 듣겠다면서 교수들 입장만 설명하고 관철시키려 한다.”, “(안건 통과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 하루 전에 간담회 여는 건 학생 의견을 듣지 않겠다는 뜻이라며 비판을 쏟아냈다. 간담회에 대하여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이른바 '지식인'들의 웃음소리가 권위적으로 나부낀다.’는 비판을 SNS에 남긴 사람도 있었다. 춘천교대 온라인 커뮤니티 석사동 친구들(석친)’에서도 간담회에 대하여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1인 시위와 단체행동, 60%에 맞서는 5%의 외침

다음날 오전, 강의실로 향하는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전교조가 애들 다 망쳐 놨다.”“5%도 많으니까 학생이면 학교 운영에 참여할 생각 말고 공부나 하라.”고 훈계를 늘어놓고 떠났다. 전혀 몰랐던 내용을 알고 간다는 듯 피켓을 유심히 읽는 눈길도 있었다. 관심 없다는 듯 피켓 앞을 지나치는 사람도 있었고, 추운데 고생이 많다며 먹을 것을 건네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누군가 물었다. “언니 뭐하세요?” 피켓 든 사람이 웃으며 짧게 답했다. “1인 시위.”



  프랑스는 20~30%, 독일은 11명 중 2춘천교대는 5%

  총장 선출에 학생이 미치는 영향

  프랑스는 40~45% 독일은 11명 중 6명 춘천교대는 60%

  총장 선출에 교수가 미치는 영향 (출처 교수신문)

  총장공모제 MOU 체결은 작년 10월 4

  그런데 왜 학생에게는 지금까지

  참여 기회도 정보도 주지 않았습니까?


<1인시위 피켓 내용>



1인 시위는 오전 수업이 종료되는 오후 1시 무렵까지 이어졌다. ‘어제 간담회 결과가 실망스러워 여기에 나섰다는 시위자는 사람들에게 해당 사안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다가가 피켓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어 오후 4시경, 본관 대회의실 앞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쯤 지나자 100여명이 모였다. 총학생회 측이 석친과 페이스북 공식 계정을 통해 17일 간담회에 대한 총학생회 측 입장을 설명하고 단체행동의 형태로 학생 의견을 표출할 것을 제안하자, 이에 동조하는 학생들이 모인 것이다.




 

같은 시각 교직원 측은 춘천교대 공무원직장협의회 이름으로 성명서를 학내 곳곳에 게재하여, 총장추천위원회 인원 구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학생 단체행동은 부당한 일에 굴복하지 말고 당당히 할 말 하라는 교직원 측 연대발언으로 시작을 열었다. 이어 28대 총학생회장 양효준 학우(사회과교육과 10)시험과 조모임으로 한창 바쁜 시기에 이런 자리에 참여한 학우 여러분에게 감사하다이 자리가 학생 권리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하고, 성명서를 낭독했다. 이어 춘천교대 중앙노래패 광야가 공연으로 흥을 돋우고, 굳은 표정으로 학생을 지나쳐 회의장으로 향하는 교수들을 바라보며 학생 자유 발언과 구호가 이어졌다.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교수들>

 

윤요순 학우(사회과교육과 10)학생 복지에 대해 가장 잘 아는 것은 학생이므로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며 총장추천위원회 인원 구성 조정의 정당성을 피력했다. 박수정 학우(사회과교육과 10)17일 간담회의 모순을 지적하며 오늘 당장 희망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해도 이런 자리를 계속 만들어 학생 의견을 나타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29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임춘혁 학우(컴퓨터교육과 11)이성적 인간이라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줄 알아야 하고, 그르다는 판단이 섰다면 자기 목소리를 내어야 하며, 그러한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배웠다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은 이러한 가르침을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 자유발언이 열 명을 넘어가고 총장추천위원회 인원 구성 조정을 요구하는 구호가 수없이 울려퍼져도, 회의장은 창문과 블라인드로 단절되어 있었다. 이를 보고 누군가 창문 열고 블라인드 올려!”라는 구호를 만들어내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회의장. 창문과 블라인드로 막혀 있다.



 마라톤 회의 끝에 불합리(不合理)를 명문화(明文化)한 지식인들

회의가 예상과 달리 길어지고, 회의장 내 분위기가 이 안건을 재검토하자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집회 분위기는 한때 희망에 가득 찼다. 회의장 내 소식을 전해 준 사람은 오늘 회의가 원래 총장추천위원 20인 중 교수 12, 학생 1인이라고 규정한 안건을 통과시킬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게 전부이기 때문에 30분 내로 끝나야 하는데 두 시간 넘게 이어지고 있다학생 단체행동에 교수님들도 이 상황을 다시 생각해보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시계가 저녁 8시를 가리킬 무렵 회의가 끝났다. 희망적인 전언(傳言)이 무색하게도, 총장추천위원회 20인 중 교수 12, 학생 1인 구성의 기존 안()이 통과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다수 교수가 학생이 버티고 있는 입구와는 반대편으로 사라지고, 학생 앞을 지나가는 교수도 굳게 입을 다문 채 학생을 피해 달아나듯 걸음을 재촉했다. 총학생회 측은 많은 학우가 힘을 보태 주셨는데 좋은 결과가 나지 않아서 죄송하다추후 대응 방법을 고민하겠다고 말하고 집회를 마무리했다.

 

 

회의가 파한 후 학생을 지나쳐 가는 교수

 

 

절망적인 잠재적 교육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

SNS와 석친에 교수 측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학생들은 우리에겐 학생 의견 고려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나가지 말라 말하더니 정작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않았다며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28대 총학생회장 양효준 학우는 석친 익명게시판을 통해 지난 3년간 민주주의와 교직에 대한 수업을 들었지만, 그와는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며 찬성 16, 반대 15, 기권 1명의 개표 결과를 알리고, “오늘 날씨가 정말 추웠는데도, 2시간에 걸친 목소리 내기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심경을 전했다.

 

28대 다이나믹 총학생회 측은 석친과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교수협의회 결과를 알리고 여러분이 총학생회에게 힘을 실어 주신 점 정말 감사하고, 여러분의 뜻을 실현시키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 총학생회는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28대 총학생회는 25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총장추천위원회 20인 중 학생대표 1, 교수위원 12'이라는 불합리(不合理)를 명문화(明文化)하려는 교수와 이를 막으려는 학생 간 대립구도에서, 교수 측이 이 불합리한 안건을 통과시켰다.”세 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찬성 16, 반대 15표라는 팽팽한 긴장구도를 빚어내며 결정된 일인 만큼, 교수 측이 섣부른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겠지만, 그 긴 시간 논의하여 낸 결과가 고작 비민주적인 절차의 합법화라는 점에서, 학생은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201210월 춘천교대를 뜨겁게 달군 총장공모제 이슈는 다이나믹 총학생회 임기가 1031일로 만료되어 현재 29대 이구동성 총학생회에게 넘어간 상태이다. 18일 이 학교에 일어난 일은, 강의실에서 오가던 이상적 이야기는 이 학교 학생을 거쳐 학교 현장까지 이어져야 할 아이디어가 아니며 강의실을 벗어나는 순간 바로 생명을 잃는다는 절망적 현실을 알려주는 잠재적 교육과정이었다. ‘교사로서의 전문성 함양을 추구하는 교육과정이 전문성에 근거한 권위로 학생에게 신뢰를 얻는 대신 권위주의로 학생을 억압하는 법을 익히는 잠재적 교육과정과 공존하는 이 학교, 그 모순덩어리 공간에서 예비교사가 무엇을 깨닫고 현장으로 향하는지 불 보듯 뻔하다. 억압과 체념을 강요하는 잠재적 교육과정 아래 춘천교대 총장공모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